성모당 봄바람 / 박동덕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찬바람만 스산하던 우리 성당에도 드디어 봄바람 불기 시작하네요.
싱그러운 꽃향기와 풀 내음이 온 누리에 번집니다.
적막하던 성모당에 다시금 마리아의 노래가 잔잔하게 울리며
묵주를 굴리며 올리는 기도 소리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을 두드립니다.
성모성월이 돌아와도 먼지만 쓸쓸히 떠돌고
새들만 가끔 찾아와 우리 대신 성모송을 노래하던 성모당에
함께 모여 기도하던 평범한 일상이 이토록 그리워할 줄 몰랐으며
그 시간이 얼마나 특별하고 행복한 날이었는지 이제야 깊이 깨닫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성모님께 아뢰어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성 요셉 성인과 함께 성가정을 이루시어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께서 겪으신 질시와 모욕,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고통까지
지켜보아야 했던 마음 찢어지는 순간에도 하느님 뜻에 온전히 순명하시며
모든 감각을 예수님을 향해 열어두시고,
구원 사업을 도우시며 일생을 바치셨던 성모님의 믿음과 사랑을
저는 아직도 온전히 닮아갈 수 없습니다만
세례를 받고 레지오를 통해
성모님과 함께 걸어온 묵주기도와 봉사의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작은 고통 앞에서 쉬이 무너지고
때로는 하느님의 자녀임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고 숨기려했던
나약한 제 모습을 고백합니다.
천주의 성모님,
사랑이란 누군가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을 때
꽃이 핀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기며 제 삶을 돌아봅니다.
불평과 시기와 질투로 누군가를 돌려세워놓고 삿대질하며
교만한 말과 행동으로 아버지 하느님을 실망시켰던,
믿음이 약한 자신을 돌아보며
아집과 오만, 편견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길을 잃을까 두렵고 불안하여
철없는 아이처럼 묵주를 들고 성모님의 치맛자락에 매달립니다.
부디 제 손을 놓지 마시고, 주님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저의 집 뜰에도 봄이 절정입니다
손님처럼 찾아오는 꽃들이 차례차례 피고지고,
지금은 ⎡금낭화⎤가 한창인 이때
저의 집 우체통에
직박구리가 둥지 틀어 알을 품고 있고
그 옆에는 금낭화가 소리 없이 피었습니다.
나는 사랑이 가득한 복주머니를 보았습니다.
싹이 돋아날 때 금낭화 새순을 보면
베이비박스에서 울고 있는 아기의 젖은 눈처럼
보이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는
불안하고 슬픈 얼굴이어서
아기 마음을 읽는 동안
세상은 더 푸르게 짙어졌습니다.
금낭화는 희망의 복주머니, 사랑의 결정체
저는 복주머니를 조심스레 만지작거립니다.
삶은 고통 속에서
숨은 행복을 찾아내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어른이란 어린아이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체통과 금낭화와 나는
가지고 있던 것들을 모두 내놓았습니다,
직박구리 둥지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금낭화 새순 같은 눈이 반짝입니다,
우체통 둥지 옆에 걸린 복주머니를 열고
따스한 봄바람이 사랑 한 움큼 살짝 집어넣고
아무 일 없는 듯 살랑살랑 지나갑니다.
성모님!
온 세상에 꽃이 피고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화사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 푸른 계절에
저희 마음에도 성모님처럼
“주님의 종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순종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 주시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6년 성모의 밤에 박동덕(도밍고)드림
